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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잔디밭

분류없음 2008/06/25 20:29 |
1

내가 잔디를 깍던 것은 열여덟 살이나 열아홉 살 때였으니까, 벌써 십사오 년 전의 일이 된다. 꽤 오래 전이다.
 가끔, 십사년이나 십오년 정도 라면은 오래 전이라고 할 만한 세월은 아니지 않는가,고 생각할 때도 있다. 짐 모리슨이 <라이트 마이 파이어>를 노래하거나 폴 메카트니가 <롱 앤드 와이딩 로드>를 노래하거나 하던 시절 -- 조금 앞뒤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쨋든 그런 때다. -- 그것이 그나 자신이 그때에 비해서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게 아닌가고도 생각한다.
 아냐, 그럴리는 없겠지. 나는 틀림없이 상당히 변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 잘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다. 아, 나는 변했다. 그리고 십사오 년이라는 것은 제법 오래 전이다.
 우리 집 근처에 -- 나는 얼마 전에 여기로 이사 왔다. -- 공립 중학교가 있고, 나는 물건을 사러 가거나, 산책하러 가거나, 할 때마다 그 앞을 지나간다. 그리고 걸으면서 중학생들이 체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치거나 하고 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특별히 좋아서 보는 것은 아니고, 그저 달리 볼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른편에 있는 벚꽃나무 가로수를 보아도 되지만, 그것보다는 중학생을 보라보는 편이 그런대로 조금은 낫기 때문이다.
어쨋든 , 그렇게 해서 매일 중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날 문득 생각했다. 그들은 열네살이나 열다섯살이다. 라고. 이것은 나한테는 그런대로 하나의 발견이었고, 작은 놀라움이었다. 십사 년이나 십오년 전에 그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태어나 있었다 해도 거의 의식이 없는 핑크빛 고깃덩어리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벌써 브래지어를 하거나, 마스터 베이션을 하거나, 디스크 자키한테 시시한 엽서를 보내거나, 체육관의 창고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어느 집 담벼락에 빨간 스프레이 페인트로 'x지 라고 쓰거나, <전쟁과 평화>를 --아마도-- 읽거나 하고 있는 것이다.
맙소사. 나는 정말로 맙소사라고 생각했다. 십사오 년 전이라면은, 내가 잔디를 깎고 있었던 때가 아닌가. 기억이란 소설과 비슷하다. 혹은 소설이란 기억과 비슷하다.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그 사실을 절실하게 실감하게 되었다. 기억이란 소설과 비슷하다, 혹은 운운 (云云, 등등).
아무리 잘 마무리된 형태로 정리하려고 노력해보아도, 문맥은 이쪽 저쪽으로 왔다갔다 하고, 마지막에는 문맥도 아니게끔 돼 버린다. 왠지 꼭 축 늘어져 버린 새끼 고양이를 몇 마리인가 쌓아 올려놓은 것 같다. 따뜻하고, 게다가 불안정하다. 그런 것이 상품이 되다니 --상품 말이야 --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가끔 느낀다. 정말로 얼굴이 빨개질 때도 있다. 내가 얼굴이 빨개지면, 온 세계가 얼굴을 붉힌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를 비교적 순수한 동기에 기초를 둔 상당히 어리석은 행위로 간주한다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 따위는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기억이 생겨나고, 소설이 생겨난다. 이것은 이미,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영구 기계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딸가닥딸가닥 소리를 내면서 온 세계를 돌아다니고, 땅 위에 끝없는 한 줄기 선을 그어 나간다.
 잘되면 좋겠습니다, 하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잘될 리가 없다. 잘 돼 본적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거냐? 그렇게 해서, 나는 또 새끼 고양이를 모아서 쌓아 올려간다. 새끼 고양이들은 축 늘어져 있고, 아주 부드럽다. 잠이 깨서 자기들이 캠프 파이어의 장작 더미처럼 쌓아 올려진 것을 알아 차렸을 때, 새끼 고양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오라, 뭔가 이상하구나, 라는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면은 -- 나는 조금은 마음이 놓일 것이다.
그런 것이다.

2

 내가 잔디를 깎던 것이 열 여덟살 아니면 열 아홉 살 때니까, 제법 옛날 얘기다. 그 당시 나에게는 동갑내기 애인이 있었지만, 그녀는 약간 사정이 있어서, 꽤 먼 도시에 떨어져 살고 있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일년에 기껏해야 전부해서 이 주일 정도였다. 우리는 그 이 주일 동안에 섹스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비교적 호사스러운 식사를 하거나, 끝없이 이렇다 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꼭 크게 싸움을 하고, 화해를 하고, 또 섹스를 했다. 요컨대 세상에 있는 일반적인 연인들이 하는 일을 압축한 영화같이 하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정말로 그녀를 좋아했는지 어떤지,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생각은 나지만,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녀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녀가 한 짱씩 옷을 벗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고, 그녀의 부드러운 바기나 안에 들어가는 것도 좋았다. 섹스가 끝난 뒤, 그녀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이야기하거나 자고 있거나 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장래 일따위는 무엇 하나 알 수 없다.
 그녀와 만나는 이 주일을 빼면, 내 인생은 지독히 단조로웠다. 가끔 대학에 나가서 강의를 받고, 간신히 남만큼의 학점을 땄다. 그리고 혼자 영화를 보거나, 별 뜻도 없이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하거나, 사이가 좋은 여자 친구와 섹스가 배제된 데이트를 하거나 했다. 여럿이 모이거나 떠들거나 하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조용한 사람이라고들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 있을 때는 로큰롤만 들었다.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불행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그 나이에는, 모두 그런 것이다.
어느 여름날 아침, 7월 초에, 애인한테서 긴 편지가 왔고, 거기에는 나하고 헤어지고 싶다고 씌어 있었다. 당신을 쭉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앞으로도 .. 운운. 요컨대 헤어지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새 보이 프렌드가 생긴 것이다. 나는 고개를 흔들고 담배를 여섯 개비 피우고, 밖에 나가서 깡통 맥주를 마시고, 방에 돌아와서 또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긴 HB 연필을 세 자루 불질렀다. 특별히 화가 난 것은 아니다. 뭘 해야 할지 잘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일하러 갔다. 그리고 얼마 동안, 나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한테서 많이 밝아졌네. 라는 말을 들었다. 인생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
나는 그 해, 잔디깎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잔디깎기 회사는 오다큐선의 교도역 근처에 있었고, 제법 장사가 잘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집을 지으면 마당에 잔디를 심는다. 또는 개를 키운다. 이것은 조건 반사와 같다. 한번에 양쪽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잔디의 초록색은 예쁘고, 개는 귀엽다. 그러나 반년쯤 지나면, 모두가 다소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잔디는 깎지 않으면 안 되고, 개는 산책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좀처럼 잘 되어 가지 않는다.
 어쨋든,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잔디를 깎아 주었다. 나는 그 전해의 여름, 대학 학생과에서 이 일거리를 찾아냈다. 나 외에도 몇 명인가 같이 들어간 녀석들이 있었지만 모두 금방 그만둬 버리고, 나만이 남았다. 일은 고됐지만, 급료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남하고 별로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한테 알맞았다. 나는 거기에 근무하게 되고 나서, 약간의 목돈을 모았다. 여름에 애인과 어딘가에 여행하기 위한 자금이었다. 그러나 그녀하고 헤어져버린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헤어지자는 편지를 받고 일주일 정도,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다, 라기보다는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일 정도밖에 생각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일주일이었다. 내 페니스는 남의 페니시같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그녀의 작은 젖꼭지를 가만히 씹고 있다. 뭔가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다.
돈의 사용처는 끝끝내 생각해 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중고차 ..스바루 1000CC.. 를 사지 않을래라고 했다. 물건은 나쁘지 않았고 가격도 적당했지만,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스피커를 새로 바꿀까 하고도 생각해 봤지만, 내가 사는 작은 목조 아파트로는 무리한 얘기였다. 아파트를 옮겨도 되었지만, 옮길 이유가 없었다. 아파트를 옮기면, 스피커를 새로 살 만한 돈이 남지 않는 것이었다.
 돈을 쓸 데가 없었다. 여름용 폴로 셔츠 한 장과 레코드를 몇 장 샀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성능이 좋은 소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도 샀다. 커다란 스피커가 붙어 있었고, FM이 아주 깨끗이 들린다.
 그 일주일이 지난 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즉, 돈을 쓸 일이 없다면, 쓸 일 없는 돈을 버는 일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느 날 아침 잔디깎이 회사 사장한테 일을 그만두고 싶은데요.라고 말했다. 슬슬 시험 준비도 하지 않으면 안되고요. 그전에 여행도 하고 싶거든요. 설마 이제는 돈이 필요 없어서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 거 유감인데. 하고 사장(이라고 할까, 정원사라는 느낌이 아저씨다.)은 말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천당을 올려다보면서 똑'똑' 하는 소리가 나게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자네는 정말이지 잘해 주었어. 아르바이트생 중에서는 제일 오래 되었고, 단골 손님들 평판도 좋고 말이지. 젊은이답지 않게 정말 잘해주었어.
네, 하고 나는 말했다. 사실 나는 대단히 평판이 좋았다. 일을 꼼꼼하게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르바이트생들은 대형 저기 잔디깎기 기계로 대충 잔디를 깎아내고 나면은, 나머지는 적당히 해치운다. 그렇게 하면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몸도 고되지 않다. 내가 하는 방법은 완전히 거꾸로 였다. 기계로는 적당히 하고, 손으로 하는 일에 시간을 들였다. 당연히 일은 깨끗이 완성된다. 단, 벌이는 적다. 한 건에 얼마라는 급료 계산법이었기 때문이다. 정원의 대체적인 면적으로 가격이 정해진다. 그리고 쭈그리고 일을 하기 때문에, 허리가 지독히 아파진다. 이것은 실제로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익숙해지기 전에는 계단의 오르내리기에도 부자유스러울 지경이다.
나는 특별히 좋은 평판을 듣자고 일을 꼼꼼히 한 것이 아니었다.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잔디를 깎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잔디깎기 가위를 갈고, 잔디깎기 기계를 실은 라이트 밴(뒤쪽 좌석을 앞으로 젖혀 짐 싣는 공간을 넓게 할 수 있는 자동차 형식의 하나)으로 단골집에 가고, 잔디를 깎는다. 여러 유형의 정원이 있고, 여러 유형의 잔디가 있고, 여러 타입의 부인들이 있다. 얌전하고 친절한 부인이 있는가 하면은, 무뚝뚝한 부인도 있다. 노브라에다 넉넉한 T셔츠를 입고 잔디를 깎고 있는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젖꼭지까지 보여주는 부인도 있다.
 어쨋든 나는 잔디를 계속 깎았다. 대부분의 경우 잔디는 충분히 웃자라고 있었다. 마치 풀밭 같았다. 잔디가 웃자라 있으면 있을수록, 일은 할 만했다. 일이 끝난 뒤에는, 정원의 인상이 완전히 변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멋진 느낌이다. 마치 두꺼운 구름이 한 순간 걷히고, 태양 광선이 주위에 꽉 찬 것 같은 느낌이다.
 꼭 한 번 -- 일이 끝난 뒤에-- 부인들 중 하나하고 잔 적이 있다. 서른 하나나 둘, 그 정도 나이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자그마했고, 작고 탄탄한 유방을 갖고 있었다. 덧문을 전부 닫고 불을 끈 컴컴한 방안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원피스를 입은 채 속옷을 벗고, 내 위에 올라탔다. 가슴보다 아래쪽은 나한테 만지지 못하게 했다. 그녀의 몸은 이상할 정도로 차가웠고, 바기나만이 따뜻했다. 그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잠자코 있었다. 원피스 옷자락이 사가사각 소리를 냈고 그것이 늦어지거나 빨라지거나 했다. 도중에 한번 전화벨이 울렸다. 벨은 한참 울리고 나서 그쳤다.
 나중에, 내가 애인하고 헤어지게 된 것은 그 일 때문이 아닐까 문득 생각하기도 했다. 특별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왠지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다. 받지 않았던 전화벨 때문이다. 하지만, 됐다. 어차피 끝난 일이다.
 하지만 난처한데, 하고 사장이 말했다. 자네가 지금 빠져 버리면, 예약을 처리할 수가 없어, 지금이 한창 시즌이고 말이지. 장마 탓에 잔디가 아주 길게 자란 것이다.
어때, 일주일만 더 일해주지 않으려나? 일주일 정도면 사람도 어떻게 구할 수 있을 거고, 그럭저럭 해 나갈 수 있겠는데 말이지, 만일 해준다면 특별 보너스를 주지. 괜찮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당장 이렇다 할 예정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일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만 이상하군, 하고 나는 생각한다. 돈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하자마자 돈이 들어온다.
 삼 일 개고 나서, 하루 비가 오고, 또 삼 일 개었다. 그런식으로 마지막 일주일이 지나갔다. 여름이었다. 그것도 반해 버릴만큼 멋진 여름이었다. 하늘에는 옛 추억 같은 하얀 구름이 떠있었다. 태양은 따갑게 살갗을 태웠다. 내 등껍질은 깨끗이 세 번 벗겨지고, 새까매졌다. 귀 뒤켠까지도 새까맸다.
마지막 일하는 날 아침, 나는 T셔츠와 쇼트 팬츠, 테니스 슈즈에다가 선클라스의 차림으로 라이트 밴에 올라탔고, 내게는 마지막이 될 정원으로 향했다. 자동차 라디오는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들고 온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로큰룰을 들으면서 차를 몰았다. 클리대스나 그랜드 펑크 같은 그런 느낌이다. 모든 것이 여름의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나는 토막토막 휘파람을 불고, 휘파람을 불지 않을 때는 담배를 피웠다. FEN의 뉴스 아나운서는 이상한 인토네이션으로 베트남의 지명을 연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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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남자

분류없음 2008/06/24 18:31 |

혹.시 내.가. 지.금.까.지.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때 나는, 지금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보스턴 백에 간단히 짐을 꾸리고, 회사에는 급한 일로 결근한다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고향 동네는 이미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의 고도 성장기에 근교에 공업도시가 들어서는 바람에 주변 풍경이 크게 변모되어 있습니다. 기념품 가게 정도밖에 없었던 역 앞에는 상점이 즐비하고, 마을에 딱 하나뿐이었던 영화관 자리에는 대형 슈퍼마켓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우리 집도 이미 없었습니다. 집은 몇 달 전에 철거되어 아무 것도 없는 휑한 공터였습니다. 정원의 나무들도 모두 잘려나가고, 거무튀튀한 지면 여기저기에 잡초가 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k가 살았던 옛집 역시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 주변은 콘크리트를 깐 주차장이었고 승용차와 밴이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에도 나는 별다른 감상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곳은 오랜 옛날부터 이미 나의 고향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해안으로 가서 계단을 걸어 방파제 위로 올라갔습니다. 방파제 너머는 이전과 다름없는,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는 드넓은 바다였습니다. 멀리로 한 줄기 수평선이 보였습니다. 해변 풍경도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거기에는 예전과 똑같은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똑같은 파도가 밀려오고, 똑같은 사람들이 파도가 찰싹이는 해변길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네시가 지나자 저녁으로 기우는 부드러운 햇살이 사방을 감쌌고, 태양은 무슨 생각잉라도 하는 것처럼 천천히 서편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모래 위에 주저앉아 가방을 옆에 놓고, 그럼 풍경을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참으로 온화하고 평온한 풍경이었습니다. 먼 옛날 거기에 그렇게 엄청난 태풍이 불어닥쳤고, 그 놓은 파도가 나의 둘도 없는 친구를 삼키고 말았다는 일 따원 마치 거짓말 같았습니다. 그 풍경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또 40년 전에 발생한 그 사고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내가 머릿속에서 조작해낸 정밀한 환상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내 안의 깊은 어둠은 이미 소멸하고 없었습니다. 그것은 찾아왔을 때처럼 불시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바지를 걷어올리지도 않고 바닷물 속으로 조용히 발을 내디뎠습니다. 구두를 신은 채 밀려오는 파도에 두 다리를 맡겨 보았습니다. 어릴 적 밀려왔던 파도와 똑같은 파도가 마치 화해라도 하듯 정겹게 내 다리를 때리고 내 옷과 구두를 검게 적셨습니다. 완만한 파도가 틈을 두고 몇 차례 밀려왔다가는 다시 밀려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 힐긋힐긋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이곳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숨을 뜯어놓은 듯 자그마한 회색구름이 하늘에 듬성듬성 떠 있었습니다. 바람도 잔잔하여, 그 구름들은 한자리에 가만히 머물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뭐라고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 구름들은 나 하나만을 위하여 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소년 시절 태풍의 커다란 소리를 내었습니다. 40년이란 세월이, 내 안에서 썪어 빠진 집처럼 무너져 내리고, 낡은 시간과 새로운 시간이 소용돌이 속에 뒤섞었습니다. 사방에서 소리가 사라지고, 빛이 휘청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몸의 균형을 잃고 밀려오고 파도 속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심장이 나의 목구멍 속에서 쿵쿵 울리고, 손발의 감각이 몽롱해졌습니다. 나는 오래도록 그 꼴로 거기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나는 더이상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모두 지난 일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무서운 꿈을 꾸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밤중에 눈을 뜨는 일도 없습니다. 나는 지금,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니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설사 너무 늦었다 해도, 나는 자신이 마침내 구원받고 회복되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공포의 심연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인생을 끝마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으니까요."
일곱 번째 남자는 잠시, 아무 말없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몸을 뒤트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일곱 번째 남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도 완전히 멎었는지,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말을 찾듯, 셔츠 깃을 다시 만지작거렸다.
"나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포 그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잠시 짬을 두고 그렇게 말햇다.
"공포는 물론 존재합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하고, 때로는 우리 존재를 압도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그 공포에 등을 돌리고, 외면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내가 아닌 다른 무엇에게 내어주게 됩니다. 내 경우에 .. 그것은 파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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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주검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와 함께 파도에 삼켜진 강아지의 시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주변 해안에서 빠져 죽은 사람은 대개 조류를 타고 동쪽에 있는 조그만 만으로 옮겨져 며칠후면 해변으로 밀려 올라오는 법인데, k의 시체는 끝까지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태풍의 파도가 너무도 엄청나 저 먼바다까지 옮겨져 해변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바다 깊이 가라앉아 물고기 밥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죠. k의 시체를 수색하는 작업은 동네 어부들의 도움을 받아 꽤 오래도록 계속되었지만, 그 일도 마지막에는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제일 중요한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장례식도 치를 수 없었습니다. k의 부모님은 거의 반 미친 상태에서 연일 해변을 헤매다니거나 아니면 집에 틀어박혀 불경을 외웠습니다.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k의 부모님은 내가 그 태풍의 한가운데로 k를 데리고 나간 일에 대해서 한번도 나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내가 k를 친형제처럼 귀여워하고 소중히 여겼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나의 부모님들 역시 그 사건에 관해서는 가능하면 언급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어요. 만약 내가 그럴 마음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k를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을, k한테로 뛰어가서 그를 끌어 잡아당겨 파도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적으로 따지면 거의 아슬아슬했을지도 모르지만, 기억 속의 시간을 더듬어보면 그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압도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k를 버리고 혼자 도망쳤던 것입니다. k의 부모님도 나를 비난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도 종기라도 다루듯 조심조심 사건에 대한 말을 일체 하지 않는 탓에 나는 오히려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긴 세월 그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누워서 매일 천장만 물끄러미 올려다보았습니다.
그 파도 머리 끝에 옆으로 누워, 히죽 웃던 k의 얼굴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습니다.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듯 앞으로 내민 손을 , 그 손가락 하나 하나를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잠자리에 들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꿈속에 그 얼굴과 손이 나타났습니다. 꿈 속에서 k는, 파도 머리끝의 캡슐 속에서 폴짝 튀어나와 거기에 있는 내 손목을 잡고 그대로 파도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꿈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나는 바다를 헤엄치고 있습니다. 때는 아주 맑게 갠 여름날 오후, 나는 천천히 바닷물을 가르고 있었습니다. 태양이 내 등을 반짝반짝 비추고 바닷물은 기분좋게 나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물속에서 누군가가 내 오른쪽 다리를 잡습니다. 발목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손의 감촉을 느낍니다. 그 힘이 세서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대로 물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맙니다. 나는 k의 얼굴을 봅니다. k는 그때처럼 얼굴이 찢어져라 입을 히죽 벌리고 웃으면서 나를 빤히 보고 있습니다. 나는 비명을 지르려 합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어푸어푸 물을 마실 뿐입니다. 물이 나의 폐로 차오릅니다.
나는 큰소리를 지르고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어둠 속에서 눈을 뜹니다.
그해 막바지에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 동네를 떠나고 싶다고 부모님께 애원했습니다. 내 눈앞에서 k를 삼켜버린 파도와 해안을 보면서 이대로 살 수는 없다고, 아시는 대로 나느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그러니까 이 동네를 떠나 어디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가능하면 멀리로 떠나고 싶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미쳐버릴 것 같다.
내 말을 듣고 아버지는 나를 위하여 전학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었습니다. 나는 1월에 나가노 현으로 떠나 그 고장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코모로 근처에 있는 친가에 살게 된 것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중학교에 진학했고 고등학교도 마쳤습니다. 방학 때도 집에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가끔 나를 만나러 올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나가노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가노 시에 있는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지의 정밀기계 회사에 취직하여 지금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평범한 인간으로 일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특별히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도 없습니다. 사람들과 잘 사귀는 편은 못되지만, 등산을 좋아하여 그 관계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몇 명 있습니다. 그 동네를 떠난 지 얼마 후 부터는 이전처럼 자주 악몽을 꾸는 일도 없었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생활에서 아주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때때로 수금원이 현관문을 두드리듯 불쑥 나를 찾아왔습니다. 잊어버릴 만하면 반드시 찾아옵니다. 언제나 같은 꿈입니다. 꿈의 세부까지 똑같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뜹니다. 이불이 땀으로 푹 젖어 있곤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나는 한밤중 두세 시에 큰 소리를 지르면서 옆에서 자고 있는 누군가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좋아한 여자도 몇 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와도 밤을 함께 지낸 적이 없습니다. 공포가 내 골수까지 파고들어와 있었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결국 나는 40년 이상이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 해안에도 근접하지 않았습니다. 그 해안뿐만 아니라, 바다라는 것도 일체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혹 바다에 가면 꿈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또 나는 원래 수영을 좋아했지만, 그 이후로는 수영장에도 전혀 가지 않았습니다. 깊은 강에도 심지어 호수에도 발길을 하지 않았습니다. 배도 가급적 타지 않았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간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내 자신이 어딘가에서 익사하여 죽는 이미지를 뇌리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두운 예감은, 꿈속의 싸늘한 k의 손처럼 내 의식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k를 휩쓸어 간 해안을 다시 찾은 것은 작년 봄의 일이었습니다.
지난해에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형이 재산을 처분하기 위하여 고향집을 매각하였는데, 광을 정리하면서 나의 어릴 적 물건이 들어 있는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을 내게 보내주었습니다. 대부분 쓸모없는 잡동사니였는데, 그 중에 k가 내게 그려준 그림이 한 묶음 있었고 그것이 우연히 내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위하여 기념으로 남겨둔 것이겠죠. 나는 두려움에 숨이 막힐 듯 하였습니다. k의 혼이 그림 속에서 내 눈앞으로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당장 처분할 생각으로 나는 그것을 다시 원래대로 얇은 종이에 싸서 상자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k의 그림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고민한 끝에 종이를 풀고 k가 그린 수채화를 굳은 마음으로 꺼내 보았습니다. 풍경화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눈에 익은 바다와 모래사장과 소나무 숲과 동네가, k다운 특징이 있는 선명한 색상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색도 바래지 않아 옛날에 보았던 인상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손에 들고 멍하니 보고 있는 사이, 나는 아주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그림들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또 예술적으로도 우수하였습니다. 나는 그 그림을 통하여 k라는 소년의 깊은 마음 같은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눈길로 주변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나는 마치 내 자신의 일처럼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k와 함께 놀았던 기억이며 함께 찾았던 장소들을 하나하나 또렷하게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소년 시절 내, 자.신.의 눈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시절 나는 k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똑같이 맑고 깨끗한 눈으로 세계를 보았던 것이죠.
나는 회사에서 돌아오면 매일 책상 앞에 앉아 k의 그림을 손에 들고 들여다보았습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내 의식이 오래도록 강경하게 거부해온 소년 시절의 아련한 풍경이 있었습니다. k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 몸 속으로 무언가가 살며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한 일주일쯤 지났을 때 일까요. 나는 퍼뜩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Posted by 스피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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